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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따뜻한 이야기,감동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신 유일한 박사의 아름다운 삶


유한양행 창업주인 유일한 박사는 기업인으로써 사회환원과 기부문화 정착에 큰 기여를 하신 분입니다. 한국 최초의 종업원 지주제 도입 및 회사 경영권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고 전문경영인에게 일임하였으며, 개인재산 또한 모두 사회에 환원하였습니다. 이처럼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셨던 유일한 박사의 삶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유한양행 창업자이신 유일한 박사님은 1926년 미국에서 귀국하셔서 제약회사인 유한양행을 설립하셨어요. 당시 일제강점기였던 우리나라에서는 기업활동 자체가 어려웠지만, 유일한 박사님은 나라 잃은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아셨기에 회사설립 후 의약품과 생활용품 등을 판매하며 민족자본 형성에 힘썼습니다. 또한 개인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시고 자신의 주식까지도 종업원에게 나눠주는 등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1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하셨고, 1995년에는 한국경영사학회로부터 ‘한국 경영사상의 선구자’라는 칭호를 받으셨습니다.


유일한 박사님은 어떤분인가요?
유일한 박사님은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나셔서 11살때 선교사들을 통해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셨고, 이후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시며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김구 선생님 비서로도 일하셨다고 해요. 광복이후 미군정청 고문관으로 임명되어 근무하시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초대 재무부장관직을 맡으셨어요.
그러나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위원으로 위촉되시면서 친일파 처벌문제로 이승만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고, 결국 사퇴하게 됩니다. 그리고 1950년 6·25전쟁 때 납북되셨다가 1960년 북한에서 사망하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어요. 하지만 1963년 유해가 송환되었고, 197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유일한 박사님께서 하신 대표적인 선행은 무엇인가요?

1959년 10월 15일 국내 최초로 직원지주제를 도입했어요. 이 제도는 사원들이 소유주식만큼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로, 오늘날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채택하고 있는 주주중심주의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즉, 모든 사원이 주인의식을 갖고 회사발전에 참여하자는 취지였죠. 1969년 4월 1일에는 사재를 출연해서 공익법인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 신탁기금'을 설립하기도 하셨어요. 기금은 해외동포 자녀교육 지원사업, 장학사업, 학술연구비 지원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1974년 12월 31일에는 재단법인 '유한재단'을 설립했고, 1977년 5월 7일에는 사단법인 '유한학원'을 설립하면서 인재양성이라는 목표아래 고등학교, 전문대학, 대학, 학원 운영등 여러가지 분야에서 큰 기여를 하셨습니다.

유일한 박사님께서는 어떻게 돌아가셨나요?
1960년 8월 9일 새벽 2시쯤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어요. 향년 56세였습니다. 사고 당일 아침 일찍 출근하기 위해 자택 앞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트럭에 치이는 사고를 당하셨는데,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을 거두셨다고 하네요. 그때 유일한 박사님의 나이가 한창 일할 나이였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유일한 박사는 왜 자식들을 위해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나요?
1969년 사망 직전 유언장을 남겨 가족들에게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들에게는 대학까지 공부시킨 것만도 고맙게 생각하니 이제부터는 자립해서 살아가라고 말했습니다. 딸 유재라씨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 역시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학교법인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을 만들어 이사장직을 맡아 헌신적으로 봉사하다가 지난 1991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였던 유일한 박사는 생전에 세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 아무리 유능한 인재라도 독점하면 안 된다. 둘째, 기업 이윤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셋째, 기업 소유주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유일한 박사가 남긴 말입니다.

유일한 박사의 유산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 이후로도 계속되는 장학사업 덕분에 지금까지도 많은 학생들이 혜택을 받고 있으며, 현재 유한대학교에서는 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매년 재학생 중 우수한 학생 10명을 선발하여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