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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따뜻한 이야기,감동글

[겸손]겸손은 아주 피기 어려운 꽃이요, 힘들게 맺는 열매,겸손은 검보다 강하다!!

 


나이팅게일
 
영국의 간호원 나이팅게일은 러시아와 영국을 비롯한 연합군의 싸움인 크리미아 전쟁(1853-56)의 참상에 대한 타임즈 통신원 럿셀의 보도가 전해진 후 어린 날의 친구였던 육군대신 허버트의 위촉을 받아 34명의 간호원과 함께 전선으로 나갔습니다. 이곳 저곳의 병원을 천사처럼 돌아다녔습니다.
그로 인해 그녀의 이름은 모든 병사들의 가슴에 새겨지고 <광명부인: The lady with the lamp>이라는 이름까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보도진은 저마다 그녀에게로 달려와서 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나이팅게일은 그 모두를 거절하고 자기를 잊어버려 주기를 부탁했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만이 그녀가 한 일의 모든 축복을 당연한 소유자임을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오로지 바랬던 것입니다.
 
 
백인부부
 
아프리카에서 농장을 경영하던 백인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을 잃게 된 여인은 농장을 떠나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농장에서 일하던 흑인 하녀의 딸이 이별을 아쉬워하며 주인 여자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벌판에서 주워서 가지고 놀던, 소녀가 가장 아끼던 광채 나는 큰 돌이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간 여자는 그것이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임을 알았고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여인은 어느 날 불현듯 흑인 소녀를 기억하고 싸구려 인형을 하나 사서 보내어 주었습니다.

흑인 소녀는 그 인형과 더불어 행복했습니다. 매일 인형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마침내 그녀가 나이 들었을 때에 그 인형을 자기의 딸에게 주었습니다. 그 딸은 그의 어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인형과 더불어 행복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어머니의 인생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자가 된 백인 여자는 돈 때문에 파생되는 자식들과의 불화와, 자신의 돈을 노리는 온갖 사람들 때문에 고통 속에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 자식들은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았지만, 그들의 어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도 일생 돈으로 인한 고통에서 해방될 날이 없었습니다.
당신은 오늘도 무엇을 자식에게 남겨 주려고 애쓰고 있습니까? 진실 된 당신의 삶을 물려 준다면 그들은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만 주려 한다면 그들은 고통의 감옥 속에 갇히고 말 것입니다.

유명한 것, 훌륭한 것
 
엔리코 카루소(1873-1921)는 이탈리아 출신의 테너 가수이다. 감미로운 목소리를 가진 그는 많은 노력으로 폭넓은 음성영역을 구축하여,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만 607회나 출연하는 진기록을 보유하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런데도 그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거리낌 없이 노래를 불러 사람들은 그를 자존심 없는 사람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어느 날 그가 시내를 걷다가 옛친구를 만났다. 두 사람은 어느 음식점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이미 많은 손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두 사람이 음식을 청할 때 종업원이 그를 알아보고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요리사 아저씨! 테너 가수 카루소 선생님이 오셨어요."

종업원의 말이 떨어지자 요리사가 즉시 달려왔다. 그리고는 아주 공손한 태도를 인사를 했다. "선생님을 이곳에서 뵈올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평소에 선생님의 노래를 직접 듣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하고 요리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이곳에서 들려드리지요." 하고 카루소가 아주 쉽게 말했다.
"정말요? 선생님과 같은 세계적인 가수의 노래를 이렇게 쉽게 들을 수 있다고요? 그런데 저는 지금 요리복을 입고 있는데 어쩌지요?" 그가 매우 미안해하며 말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하고 카루소는 그를 위안시키고 즉시 노래를 시작했다.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식당 홀 안에 가득히 울려 퍼졌다. 노래가 끝났을 때, 모든 손님들은 그가 카루소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의 아름다운 선율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요리사는 더욱 감격해 했다.

잠시 후, 식사가 시작되어 친구가 카루소에게 왜 아무 곳에서나 그렇게 노래를 부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나의 노래를 듣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네. 더욱이 저 요리사도 요리를 맛있게 해서 남들을 기쁘게 해주는 예술가가 아닌가. 예술가를 위해 노래 하나 하는데 그렇게 인색할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유명하다는 것과 훌륭하다는 것은 다르다. 자기의 재능을 발휘하여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은 유명한 것이지만, 어렵고 딱한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행위는 훌륭한 일인 것이다. 카루소의 폭넓은 인간존중 정신을 소위 유명하다는 사람 모두가 본받아야 할 것이다.
 
겸손할 자는 항상 이긴다.
 
미국의 독립 전쟁 당시, 군인들이 전투 준비를 하느라고 부산을 떨고 있는 동안 사복 차림의 한 사람이 부하들에게 무거운 지렛대를 들어 올리라고 거만스럽게 명령하고 있는 하사 옆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그 하사에게 "왜 저 군인들을 도와 주지 않습니까?"하고 물었다.
대답은 화가 치솟은 목소리로 되돌아 왔다.
"난 하사란 말이야!"
신사는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나서 코트를 벗어놓고 달려들어 군인들을 도와 주었다. 일이 다 끝난 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사님, 일할 사람이 모자라면 언제든지 사령관에게 찾아오시오. 내가 기꺼이 도와주겠소."
이 말을 남기고 조지 워싱턴은 코트를 입고 사라졌다.
이웃을 돕기 위해서는 간혹 자신을 비하해야 한다. 겸손한 자는 항상 이긴다.

대통령의 어머니
 
워싱턴의 어머니인 메리 보울은 워싱턴이 대통령이 된 후 처음으로 고향인 마운트 버넌을 방문했을 때 평소와 다름없이 소박한 옷차림으로 문앞까지 나가 아들을 맞았다.
"죠지 정말 잘 왔다. 나는 너에게 주려고 지금 맛있는 과자를 만들고 있단다.”
반갑게 아들을 맞이한 메리 보울은 빵가루 투성이의 손을 닦으며 부엌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워싱턴을 수행하던 사람들은 너무도 놀랐다. 그러나 워싱턴은 더 없이 기쁜듯 주의 사람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여러분, 내 어머니가 과자를 만들어 주신답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만든 과자를 즐겨 먹었습니다. 자, 사양말고 안으로 들어가서 어머니가 만든 과자를 다함께 먹읍시다!”잠시 후 워싱턴은 조용히 어머니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어머니, 이제 집안 일은 직접 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려운 일은 하인들을 시키시고 그저 감독만 하십시오.”그러자 메리 보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다. 대통령이 나온 마을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나 때문에 손해를 보거나 내가 오히려 어려운 사람들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나는 하나님을 대할 면목이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앞으로 조금이라도 더 일을 해 수입을 늘려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생각이란다. 만일 대통령인 네가 끝내 내게 일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부리라고 한다면 나는 대통령의 어머니 따위는 언제라도 그만 둘란다!”

링컨의 겸손
 
전세계 인류에게 영향을 준 미국이 낳은 위인 한 사람만 꼽으라면 누구나 링컨을 꼽을 것이다. 그가 대통령이었기 때문도, 남북전쟁을 치렀기 때문도 아니다. 적어도 그는 열두 번 직업을 바꾸었다. 뱃사공, 농부, 노동자, 장사꾼, 군인, 우체국직원, 측량사, 변호사, 주의원, 상원의원, 대통령 등이다. 그는 독학으로 계속 발전해 나갔다.
'나는 배우기를 멈추지 않으리라'는 그의 표어처럼 그는 날마다 책을 읽고 자기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이나 훨씬 젊은 사람에게도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기를 힘썼다.
57세로 암살 당하는 순간까지 그는 모든 사람에게 배우는 자세로 살았다. 링컨의 세익스피어 연구는 전문가 수준이었고 그의 성경지식은 신학자 수준이었다고 한다. 링컨은 스무살 때까지 도끼를 안 잡은 날이 없을 만큼 고생했고 학교 공부는 모두 합해서 1년 정도로 불우한 환경이었으나 통나무집에서 자라면서도 혼자 공부해서 문학을 연구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변호사 자격을 따고 대통령까지 되었다.


 추앙받은 미국 퍼스트레이디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에 대한 관심은 여러 갈래다. 남편의 정책결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느냐에서부터 성격 가정생활 사회활동 의상 취미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이 얘깃거리다. 그러나 금전문제가 관심의 대상이 된 적은 한번도 없다. 백악관 안주인의 축재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히려 검소하고 절약하는 형이었다. 지미 카터대통령(76∼80년)의 부인 로절린 카터가 백악관에 들어오면서 남편이 조지아주 주지사 시절에 쓰던 낡은 옷보따리를 들고 들어온 일화는 유명하다. 중동 평화협상의 기초를 마련한 캠프 데이비드회담 때 매일 남편으로부터 회담 진행상황을 보고받을 정도로 정치에 깊이 개입한 그녀였지만 생활 자체는 검소했다.
조지 부시대통령(88∼92년)의 부인 바버라 부시 또한 검소했다. 전형적인 시골 할머니를 연상케 했던 그녀는 한때 패션잡지들에 의해 「옷을 가장 잘 못입는 퍼스트 레이디」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는 최고였다.
남편을 위해 방송국을 사서 운영했던 린든 존슨대통령(63∼69년)의 부인 레이디 버드 존슨도 근검 절약했다. 그녀는 존슨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그의 정치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 물려받은 유산에다 은행으로부터 빌린 1만달러를 합쳐 당시 파산직전에 있던 텍사스주의 라디오방송국을 사 이를 유수의 방송사(TBC)로 키워낸 장한 아내이기도 했다.
 
겸손한 위인들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튼은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우주에 관해 아는 지식은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들이 바다의 신비에 대해 아는 지식보다 적거나 아니면 그와 비슷할 것이다.”
이런 겸손의 모습은 슈바이쩌 박사에게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가 선교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가서 병원을 지을 때, 나무를 베고 운반하고 못질하는 일을 직접 했습니다. 그때 혼자 그 많은 일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슈바이쩌는 옆에 있던 한 청년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저는 지식인이어서 그런 일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막일은 못 배운 사람들이나 하는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슈바이쩌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도 자네만 할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네. 그러나 웬만큼 배웠다 싶으니까 이젠 아무 일이나 다 하겠더군.”
세계의 성자로 추앙 받고 있는 알버트 슈바이쩌 박사가 그 당시 지식인들이 꺼려하던 막일을 했다는 것은 그의 겸손을 보여주는 좋은 일례입니다.

슈바이처의 겸손
 
20세기의 예수라고 불리운 슈바이처 박사는 아프리카 검은 대륙의 랍바네대 병원에서 죽어 가는 생명들을 위하여 나의 모든 것을 바치고도 부족 되어 모금하여서 병원유지비를 충당하였다. 한번은 모금을 하기 위하여 그의 고향에 돌아올 때 고향 역에 많은 친척친지와 동료들이 영접하러 나와 있었다.
열차가 도착했을 때 맞으러 나온 환영객들은 1등, 2등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맨 뒷간 3등 열차에서 걸어서 나오고 있었다. 영접 객들은 달려가서 박사에게 왜 3등간에 타고 오셨느냐고 원망스럽게 물었다.
슈바이처 박사는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4등간이 있어야지요." 하고 더 낮은 자리가 없음을 아쉬워하는 태도였다. 겸손한 자가 존경을 받는다. 보화는 낮은데 묻여 있고 물은 낮은 골짜기를 흐른다.
 
겸손
 
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 건국 초기의 지도자로 대통령만 못 되었을 뿐 자기가 원하는 모든 중요한 직위를 다 가져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학교를 다닌 기간은 고작해야 2년 남짓이었습니다.
그가 22살이었을 때에 스스로 반문하기를 "내 인생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이런 자기 반성을 거쳐 12가지 덕목들을 뽑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습니다.
첫째- 절제: 과음 과식을 하지 않는다.
둘째- 침묵: 자신과 타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하지 않는다.
셋째-질 서: 물건을 제자리에 놓고 일은 알맞는 시간에 한다.
넷째- 결단: 해야 하는 일은 꼭 완수한다.
다섯째- 절약: 비싼 것은 사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자신에게 좋은 것이면 산다.
여섯째- 근면: 시간은 헛되이 쓰지 않는다.
일곱째- 성실: 남을 해치는 책략을 사용하지 않는다.
여덟째- 정의: 남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남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는다.
아홉째- 중용: 극단은 피한다.
열째- 청결: 몸, 옷, 집이 불결한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열한번째- 평정: 사소한 일에 화를 내지 않는다.
열두째- 순결: 성을 남용하지 않고 건강과 생산을 위해서 사용한다.
프랭클린은 이상의 12가지를 적어서 목사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다 좋은데 한가지가 빠졌군요. 바로 '겸손'입니다. 이 12가지를 다 이루었다고 해도 '겸손'이 없으면 12가지를 다 잃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프랭클린은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가장 첫 번째 항목에 겸손을 넣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 단위를 13주 단위로 구분하여 매주 한 항목씩 묵상하고 자신에게 깊이 적용하려고 힘썼다고 합니다.
그는 78세 때 회고록을 쓰면서 말했습니다. "완벽의 경지에는 오르지 못하였으나 노력하였던 덕택에 좀 더 선량하고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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