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아무런 걱정 없이 무탈한 삶을 살고 싶은 게 우리 모두의 바람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과 달리 인생길은 굴곡의 연속입니다.
실패와 좌절, 시련과 갈등처럼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삶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애도 마찬가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보다 사고나 질병으로 후천적 장애를 앓는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장애는 분명 평탄한 삶의 걸림돌입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소개할 세 사람에게 '장애란 단지 불편한 존재'일 뿐입니다.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딛고 일어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겠습니다.
◆ 청각장애를 극복한 세계적인 타악기 연주자
"에블린 글레니 Evelyn Glennie"
둥~ 두뚜둥!
심장박동처럼 에너지 넘치는 세계적인 타악기 연주자 에블린 글레니의 연주 소리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립니다.
그런데 정작 그녀는 자신의 연주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청각장애인인 그녀는 연주할 때 느껴지는 진동을 통해 '자신의 연주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짐작할 뿐입니다.

스콜틀랜드에서 태어난 소녀 에블린 글레니는 학교 음악 시간에 친구의 북 치는 모습을 보게 된 후
타악기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강렬한 사운드와 묵직한 퍼포먼스, 그리고 공간을 채우는 압도적인 울림에 매료된 것.
하지만 안타깝게도 얼마 후 그녀는 청각을 완전히 잃게 됩니다.
여덟살 때 볼거리 후유증으로 귀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열두살이 되면서 결국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됐습니다.
청각장애 판정을 받은 후에도 글레니는 타악기에 대한 관심을 버릴 수 없었고,
피아노를 배웠던 토대로 연주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하지만 '연주법을 터득하더라도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기 어렵다'는 현실이 다시 한 번 앞길을 가로막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글레니의 부모도 딸의 선택을 적극 지지했습니다.
드럼을 사주고 특별 레슨도 받게했습니다.
글레니를 지도한 교사는 그녀에게 몸으로 소리를 느끼는 방법을 훈련시켰습니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결과 손과 발은 물론 온 몸으로 음의 진동을 감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더 이상 귀가 필요없게 된 것입니다.
1976년 열세 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음반 작업에 참여한 이후
에블린 글레니는 '솔로 퍼커셔니스트(full-time solo percussionist : 솔로 타악기 연주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활동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협연과 독주 콘서트에는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가 오르는 상황,
타악기 독주자인 그녀는 스스로 무대에 설 기회를 만들기 위해 자신만의 영역을 조금씩 확장해 갔습니다.

1982년에는 기존의 입학 기준까지 바꾸며 런던의 왕립음악아카데미에 입학했습니다.
'청각장애인은 입학할 수 없다'며 입학을 거절했던 아카데미를 끝까지 설득해 결국 꿈을 이룬 것입니다.
게다가 왕립음악아카데미가 최고의 재학생에게 수여하는 '퀸스 코멘데이션 프라이즈'를 받기도 했습니다.
20여 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연주하며 노력한 끝에 그녀는 미세한 대기의 변화로도 음의 높낮이를 읽어 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청각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초인적인 감각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결국 에블린 글레니는 세계가 인정하는 타악기 연주자로 우뚝 서게 됩니다.

그녀는 50여 개의 타악기를 한꺼번에 다룰 수 있으며,
갖가지 타악기로 작은 빗방울 소리부터 천둥 소리까지 만들어 냅니다.
1년에 120여 회의 연주회를 비롯해 수 많은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악 명인들과도 협연했으며,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는 천 명의 드러머를 이끌고 멋진 공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지금껏 30개가 넘는 음반을 내며 그래미상, 폴라음악상 등 최고 권위의 음악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에는 대영제국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에블린 글레니는 자신과 같은 청각장애 아이들의 음악치료법을 지원해 주는 '런던 베토벤 기금단체'의 회장으로도 활동 중입니다.
청각장애 아이들에게 그녀는 존재만으로도 용기와 희망을 주는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 KO승을 멈추지 않았던 의족 복서
크레이크 보자노프스키 "Craig Bodzianowski"
빠른 스피드, 단단한 맷집, 강력한 펀치.
권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들라면 주로 이런 것들이 거론되겠지만, 그를 보면 사실 답은 따로 있는 듯합니다.
강인한 정신력이 바로 그것.
꽃길만 걷던 삶의 한 가운데에서 사고를 당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KO 복서 크레이크 보자노프스키의 이야기입니다.

80년대 초반 링을 점령했던 시카고 출신의 촉망받는 권투선수 크레이크 보자노프스키.
거침없는 주먹과 무서울 것 없는 패기가 주무기였던 그는 프로 데뷔 이후 13전 전승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했습니다.
하지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어느 날 일어난 오토바이 사고로 9시간이 넘는 대수술 끝에 결국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게 됩니다.
당시 그의 나이 겨우 스물셋.
한창 링 위를 활보하며 부와 명예를 쌓아야 할 나이에 다리를 잃은 보자노프스키는 결국 좌절하게 됩니다.
운동 선수에게 장애는 사형선고나 다름없기 때문.
천하의 챔피언 타이틀도 이제 화려한 과거로만 남겨둬야 했습니다.

하지만 절망하기엔 일렀습니다.
많이 불편하긴 하지만, 의족이라는 희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무로 된 의족을 찬 후에도 매일 수영을 하고, 매주 10마일 이상의 조깅과 90마일 이상의 자전거 타기 훈련을 강행했습니다.
사고 전에도 버거웠던 훈련을 초인적인 의지로 이겨냈습니다.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던 스타 복서의 모습은 온데 간데없고, 무서운 집념으로 불운을 이겨낸 강인한 복서만이 남게 됐습니다.
교통사고 발생 후 18개월 만에 다시 링에 서게 된 보자노프스키.
사고 전과 마찬가지로 장애인 대회가 아닌 일반 대회에서 경기를 펼친 그는 결국 KO승을 거두게 됩니다.
이로써 너무나 소중한 14연승 기록을 세우게 된 그.
경기를 지켜본 모든 사람이 간절한 마음으로 그를 응원했고, 승리와 함께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이날 치뤄진 보자노프스키의 복귀전은 권투 역사상 가장 짜릿하고 감동적인 순간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후로도 도전은 계속됐습니다.
왼쪽 가슴 위에 새긴 악어 문신 때문에 '게이터(Gator, 악어)'라 불린 그는 상대 선수들을 하나씩 제압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31승(24KO) 1무 4패라는 전적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이중 의족을 한 채 거둔 승리만 18회.
그는 명실상부한 동급 최강 복서였으며, 더 이상 그를 장애인 복서라 여기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보자노프스키의 일화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으며, 그의 일대기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2013년 52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직전에는 늦은 나이에 요리 명문 학교인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를 졸업하고
요리사로 활동하는 등 끝까지 도전하는 삶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 뜨거운 열정을 지닌 의족 배우
에이미 멀린스 "Aimee Mullins"
육상선수, 모델, 영화배우.
에이미 멀린스의 직업은 그야말로 화려하고 역동감 넘칩니다.
타고난 외모로 대중을 사로잡는 매력을 가진 그녀,
하지만 사람들이 그녀를 사랑하는 진짜 이유는 바로 영화 같은 그녀의 인생 때문입니다.

에이미 멀린스는 1976년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금발에 예쁜 아기였지만, 날 때부터 종아리뼈가 없었습니다.
4만명당 1명 꼴로 나타난다는 선천적 기형인 '비골 무형성(fibular hemimelia)'을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결국 태어난 지 1년만에 무릎 아래를 절단한 그녀는 양쪽 다리에 의족을 한 채 자라야만 했습니다.
마냥 뛰어 놀기에도 모자란 어린 시절,
의족을 차고 두꺼운 고무밴드로 조인 뒤 다리 근육을 강화하는 물리치료를 받으며 지내야 했던 멀린스는 어느 날,
담당의사로부터 "넌 정말 강하고 힘이 넘치는 소녀야. 내 생각에 넌 이 밴드 하나쯤은 끊을 힘이 있는 것 같아"라는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한마디가 그녀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았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조지타운대학교에 입학한 멀린스는 불가능한 분야에 도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의족을 한 채로 전미대학경기협회(NCAA) 육상 경기에 참여하는 것.
장애인 경기가 아닌 일반 대회, 그것도 왕성한 혈기를 자랑하는 대학생들의 경기에서 그녀는 유일한 장애인이었습니다.
1996년에는 미국 대표선수로 장애인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100미터와 200미터 단거리 경기에 출전해 세계 신기록을 세운 것입니다.
또한, 당시 그녀가 세운 절단장애인 멀리뛰기 세계 신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1999년, 그녀는 알렌산더 맥퀸 패션쇼에 서며 모델로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영화배우로, 작가로, 강사로 끊임없는 도전을 거듭하며 '원더우먼'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열정 넘치는 그녀의 모습에 반하게 됩니다.

2009년 미국의 '피플'지는 멀린스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50인으로 선정했으며,
2015 세계여성경제포럼에서는 기조연설을 맡기도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는 또 다른 분야에 도전하며 사람들에게 용기와 감동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견디기 어려울 만큼 힘든 순간이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건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에블린 글레니, 크레이크 보자노프스키, 그리고 에이미 멀린스 세 사람은 조언합니다.
"당신도 할 수 있다고,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입니다.
#역경
#도전
#꿈
#감동
출처 : 삼성화재 소통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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